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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148조짜리 새 판 벌였다 — 로봇이 AI 데이터센터 짓는 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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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말, FT 단독 보도 하나가 실리콘밸리를 술렁이게 했다. 소프트뱅크가 새로운 AI·로보틱스 회사 '로제(Roze)'를 미국에 설립하고, 올해 안에 IPO를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목표 기업가치는 최대 10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48조 원.

숫자 자체보다 더 충격적인 건 타이밍이다. 로제는 아직 제품이 없다. 정식 법인 설립도 완료되지 않았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애널리스트 데이를 7월로 잡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회사 실체보다 IPO 홍보 일정이 먼저 나온 셈이다.

"또 손정의가 뭔가 저지르는구나"라고 넘기기엔 이 프로젝트의 구조가 꽤 흥미롭다.

로봇이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장면

로제는 뭘 하는 회사인가

로제의 핵심 사업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사람 대신 로봇이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AI 인프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가 병목이 됐다. 엔비디아 GPU가 있어도 서버를 설치할 건물이 없으면 소용없다. 클라우드 대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설비투자(CAPEX)를 쏟아붓는데 건설 인력과 공사 기간이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로제는 이 문제를 자율 로봇으로 풀겠다는 구상이다. 서버랙 설치, 배선 작업, 냉각 시스템 세팅 같은 반복적이고 정밀도가 필요한 작업을 로봇에게 맡기면 공사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는 논리다. 소프트뱅크 내부에선 "AI 인프라의 피지컬 레이어를 장악한다"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여기에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에너지 자산과 토지 인프라도 로제에 편입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데이터센터를 짓는 로봇 회사인 동시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부지와 전력까지 직접 갖추는 수직 통합 모델이다.

손정의의 계산 — 오픈AI 뒤에 인프라

이 구도를 이해하려면 손정의가 오픈AI에 얼마나 베팅했는지부터 봐야 한다. 소프트뱅크는 올해 초 오픈AI에 400억 달러(약 57조 원) 투자를 완료하며 지분 약 10%를 확보했다. AI 소프트웨어 쪽 포지션은 이미 잡혔다.

이제 그는 AI가 실제로 작동하는 물리 공간, 즉 데이터센터 인프라에서 두 번째 수익 구조를 만들려 한다. 오픈AI가 소프트웨어를 팔아 돈을 벌면, 그 소프트웨어가 돌아가는 서버를 담은 데이터센터는 로제가 짓고 운영한다는 시나리오다.

솔직히 이 아이디어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빅테크 4사(메타·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의 올해 AI 인프라 투자 합계가 5000억 달러(약 700조 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오는 판이다. 수요는 실제로 있다.

문제는 로제가 정말 이 수요를 잡을 수 있느냐다.

손정의 회장의 AI 전략 구도

ABB 로보틱스가 핵심 무기

로제의 기술 기반으로 거론되는 게 ABB 로보틱스다. 소프트뱅크는 작년에 ABB 로보틱스 인수에 합의했는데, 세계 최대 로봇·자동화 솔루션 기업 중 하나다. 자동차 공장 조립 라인부터 물류 창고 자동화까지 광범위한 산업용 로봇을 만든다.

ABB 로보틱스의 하드웨어에 AI 제어 소프트웨어를 얹어 데이터센터 건설 특화 로봇으로 전환한다는 게 구상이다. 이미 검증된 로봇 하드웨어 플랫폼 위에 소프트웨어 레이어를 올리는 접근은 현실적이다. 처음부터 로봇을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길이다.

다만 산업용 로봇을 데이터센터 건설 로봇으로 전환하는 건 생각보다 복잡하다. 공장 조립 라인은 환경이 통제돼 있고 동작 범위가 정해져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은 변수가 훨씬 많다. 층고, 배선 규격, 현장 상황이 현장마다 다르다. ABB의 기술력이 있어도 소프트웨어 개발과 현장 적용까지 시간이 걸린다.

데이터센터 공급 대란, 지금이 타이밍

로제가 이 시점에 등장한 건 우연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모두 최근 실적 발표에서 "AI 컴퓨팅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된다"고 밝혔다. GPU는 서서히 풀리고 있지만 데이터센터 건물 자체가 부족하다.

미국 기준으로 데이터센터 하나를 계획하고 착공해 가동까지 평균 3~4년이 걸린다. 부지 확보, 허가, 전력 인프라 연결, 건설, 장비 설치까지 각 단계마다 시간이 붙는다. 이걸 로봇으로 단축할 수 있다면 강력한 가치 제안이 된다.

아마존 웹서비스(AWS)가 최근 발표한 데이터만 봐도 북미에서만 수십 개 데이터센터가 추가 건설 중이다. 수요 측에서 돈을 쓸 의지는 충분하다. 공급 측에서 더 빠르게 지어줄 수 있다면 선도 계약을 따낼 여지가 있다.

서버랙을 정밀하게 설치하는 로봇 팔

148조 평가는 합리적인가

여기서부터 내가 좀 솔직해져야 할 것 같다.

148조원 기업가치는 현 시점에서 근거가 희박하다. 로제는 법인도 아직 완전히 설립되지 않았고, 실제로 로봇이 데이터센터를 지었다는 레퍼런스가 없다. ABB 로보틱스 인수도 아직 최종 완료 전이다. 소프트뱅크 내부에서도 "이 속도와 규모 목표가 맞냐"며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임원들이 있다는 얘기가 FT에 실렸다.

스타트업이 아이디어 단계에서 멀티 조 단위 가치를 얘기하는 경우는 AI 붐 이후 자주 봤다. 그런데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 시절에도 이 방식으로 여러 번 삐걱댔다. WeWork 사태는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반면 차이점도 있다. WeWork는 "부동산 임대를 테크 회사처럼 보이게 하는" 거짓말에 기반했다면, 로제의 아이디어는 실제 기술 수요에 기반한다. 데이터센터 건설 자동화라는 문제는 실재하고, ABB 로보틱스라는 실물 자산도 있다. 손정의가 또 스토리텔링만 하는 건지, 아니면 이번엔 실체가 다른 건지는 7월 애널리스트 데이를 봐야 판가름이 날 것 같다.

오픈AI에 57조를 넣은 사람이 그 다음엔 데이터센터 로봇 회사를 148조로 키우겠다고 한다. 어이가 없을 법도 하지만 2026년 AI 시장에서 이 정도 규모의 얘기는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로제가 진짜 상장을 밀어붙인다면, AI 인프라 투자 경쟁의 판이 또 한 번 바뀔 수 있다.


소프트뱅크 로제 관련 정보 출처: FT, CNBC, TechCrunch, 뉴시스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