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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시리가 사라진다 — 제미나이 1조원 베팅, iOS 27이 뒤집는 AI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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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DC 2026이 6월 8일로 잡혔다.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인데, 벌써 흘러나오는 정보만 봐도 이번엔 진짜 뭔가 달라질 것 같다. 핵심은 하나다. 시리(Siri)가 완전히 바뀐다.

솔직히 말하면 시리는 지금까지 애플의 흑역사에 가까웠다. 2011년 아이폰 4S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미래를 보는 기분이었다. 근데 10년이 넘어가는 동안 챗GPT가 등장하고 제미나이가 나오고 클로드가 나왔는데, 시리는 그 자리에서 크게 안 움직였다. "아침 알람 맞춰줘"는 잘 하는데, 맥락 있는 대화나 복잡한 요청을 시키면 금방 막혔다.

그 오명을 씻으려는 건지, 애플이 이번에 꽤 과감한 선택을 했다.

구글 제미나이를 탑재한 차세대 시리의 모습

연 10억 달러, 구글 제미나이를 선택한 이유

애플이 구글과 시리에 제미나이를 탑재하기로 계약했고, 그 비용이 연간 약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다. 처음 보도가 나왔을 때 "애플이 그 많은 돈을 왜?" 하는 반응이 많았다. 근데 내막을 보면 나름 계산이 있다.

앤트로픽(Anthropic)도 후보였다. 클로드가 기술적으로는 더 낫다는 평가도 있었다. 근데 앤트로픽이 요구한 금액이 연 15억 달러 이상이었다. 제미나이보다 50% 비싼 거다. 결국 비용과 구글과의 기존 관계(아이폰 기본 검색엔진 계약)를 고려해 제미나이로 낙점됐다.

구글 입장에서도 나쁜 거래는 아니다. 아이폰 사용자가 전 세계 20억 명이 넘는다. 그 기기에 제미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데이터, 브랜드, 시장 확장 면에서 구글한테도 매력적인 딜이다.

"바보 시리"에서 AI 에이전트로

시리의 변화 방향이 흥미롭다. 단순히 챗봇을 갖다 붙이는 수준이 아니다. 애플이 그리는 그림은 '시스템 전체를 제어하는 AI 에이전트'다.

지금 시리는 앱을 실행하거나 알람을 맞추는 수준이다. 앞으로 나올 시리는 다르다. 메일을 열어서 내용을 요약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캘린더에 일정을 등록하고, 문자로 답장까지 보내는 흐름을 한 번의 요청으로 처리한다. 화면에 보이는 것과 내 개인 데이터를 연동해서 맥락을 이해한다는 게 핵심이다.

새로 나오는 'Ask Siri' 기능이 이걸 구현한다. 기존의 짧은 명령어 방식이 아니라, 대화 흐름을 이어가면서 여러 앱을 넘나드는 에이전트 역할을 하겠다는 거다. 독립형 시리 앱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 앱은 이전 대화를 기록하고, 첨부파일을 허용하고, 음성과 텍스트를 자유롭게 오가는 방식으로 설계될 예정이다.

챗GPT나 제미나이를 써본 사람이라면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이 올 거다. 시리가 거기까지 올라온다는 얘기다.

아이폰에서 여러 AI 모델을 선택하는 화면

iOS 27 Extensions: 시리 AI 직접 골라 쓰는 시대

이게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다. iOS 27에서 'Siri Extensions'라는 기능이 나온다. 앱스토어에서 AI 챗봇 앱을 설치하면, 시리의 AI 두뇌로 쓸 수 있게 연결되는 방식이다.

공식 발표 전 유출된 정보에 따르면 초기 지원 AI는 세 곳이다. 구글 제미나이, 앤트로픽 클로드, 오픈AI 챗GPT. iOS 26에서는 챗GPT 하나만 외부 AI로 쓸 수 있었는데, iOS 27부터는 선택지가 확 넓어진다.

설정 앱에서 'Apple Intelligence 및 Siri' 섹션에 들어가면 어떤 AI를 쓸지 고를 수 있고, 나아가 질문 유형별로 다른 AI를 배정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코딩 질문은 클로드에게, 검색이 필요한 건 제미나이에게, 창의적인 작업은 챗GPT에게 이런 식으로.

알렉사, 메타 AI,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 퍼플렉시티, xAI의 그록도 앱스토어에 이미 있으니 나중에 확장될 여지는 충분하다. 애플이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AI 시장 전체를 끌어안는 구도다.

왜 지금인가

애플이 AI에서 뒤처졌다는 말은 2년 전부터 나왔다. 실제로 그랬다. 챗GPT가 나왔을 때 애플은 아무것도 없었고, 구글이 제미나이를 내놓을 때도 시리는 그 자리였다. 경쟁사들이 AI 모델을 직접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동안, 애플은 내부적으로 LLM 개발에 투자하면서도 외부에 내놓을 만한 게 없었다.

그 공백을 메우려고 일단 외부 AI(챗GPT)를 빌려왔고, 이제는 제미나이로 시리 자체를 바꾸는 단계까지 왔다. 자체 모델도 계속 개발 중이지만, "애플이 AI 직접 만든다"는 방향보다는 "최선의 AI를 골라 아이폰에 통합한다"는 전략으로 선회한 느낌이다.

이게 나쁜 전략은 아니다. 애플의 강점은 원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과 생태계 잠금 효과다. AI 모델을 직접 개발하는 건 오픈AI나 구글 같은 회사들과 정면 경쟁인데, 굳이 거기서 이길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플랫폼이 되는 게 더 영리한 수일 수 있다.

WWDC 2026을 앞두고 애플의 AI 전략을 시각화한 이미지

아직 남은 불안 요소들

다 좋아 보이지만 변수가 있다. 애플이 완성형 시리 출시를 여러 번 미뤘다. iOS 26.5(5월)에 일부 기능이 들어올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WWDC 이후 가을이나 그 이후로 밀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제미나이와 시리의 통합이 생각보다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지금 iOS 26에서 기본 시리도 아직 불완전한 게 있는데, 거기에 외부 LLM을 깊이 통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WWDC에서 발표만 거창하게 하고 실제 기능은 나중에 차차 나오는 패턴을 애플은 반복해왔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그래도 방향 자체는 맞다고 생각한다. AI 에이전트가 스마트폰 운영체제에 깊게 통합되는 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구글 안드로이드도 제미나이를 시스템 전반에 통합 중이고, 삼성도 갤럭시 AI로 같은 방향을 가고 있다. 애플이 느렸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치고 들어오면 승부가 달라질 수 있다.

6월 8일 WWDC. 거기서 시리가 어떻게 나오느냐를 보면 올해 스마트폰 AI 경쟁의 윤곽이 잡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