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ublished on
1.6조 파라미터 딥시크 V4 — 엔비디아 대신 화웨이 칩 선택한 진짜 이유
- Authors
- Name
딥시크가 4월 24일 새 모델을 공개한 날, 엔비디아 주가는 4% 올랐다.
지난해 1월 딥시크-R1이 나왔을 때는 달랐다. 하루 만에 엔비디아 시총 5890억 달러가 증발했고, 그게 미국 증시 역사상 단일 기업 기준 하루 최대 시총 손실 기록이었다. 공포가 실제였다. 저렴하고 효율적인 중국 AI 모델이 등장하면 엔비디아 GPU가 필요 없어지는 게 아닌가—시장이 그렇게 해석했다.
이번엔 달랐다. V4 발표 이후 한국과 대만 증시는 나란히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엔비디아는 올랐다. 홍콩에서 떨어진 건 지푸AI, 미니맥스 같은 중국 AI 스타트업들이었다. 이 역설을 이해하면 2026년 AI 시장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보인다.

화웨이 칩으로 만든 1조 6천억 파라미터
딥시크 V4 프로의 파라미터 수는 1조 6천억 개다. 현재 공개된 오픈소스 모델 중 가장 크다. 맥락 윈도는 100만 토큰. 책 한 권 분량을 통째로 집어넣고 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숫자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이 모델이 뭘로 굴러가냐는 거다.
V4 프로는 엔비디아 GPU가 아니라 화웨이 어센드(Ascend) 칩 위에서 구동된다. 화웨이는 V4 발표와 동시에 어센드 950 시리즈 전 제품군과 완전 호환된다고 공식 확인했다. 딥시크는 올해 하반기 어센드 950 양산이 본격화되면 API 가격을 추가로 낮출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이 수출 통제로 막아둔 엔비디아 칩 없이, 프론티어에 근접한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건 중국 AI 자립 측면에서 작지 않은 이정표다.
라이선스는 MIT다. 가중치를 허깅페이스에 올려뒀고 누구나 내려받아 자체 서버에서 실행할 수 있다. 수정도 상업 활용도 자유다. V4-플래시라는 소형 버전(284억 파라미터)도 함께 공개됐는데, 출력 토큰 100만 개당 0.28달러로 실용적인 용도엔 이쪽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코딩은 GPT-5.5와 대등, 그 외엔 격차 남아
솔직하게 말하면, 범용 성능에서 최전선 모델과의 차이가 아직 있다.
딥시크의 자체 기술 보고서는 "GPT-5.4와 제미나이 3.1 프로보다 소폭 뒤처진다"고 명시했다. 독립 평가 기관 CAISI도 "현재 최전선 모델 대비 약 3~6개월 격차"라고 평가했다. 좋게 포장할 이유가 없는 숫자다.

코딩 분야는 다르다. 라이브코드벤치에서 V4 프로는 93.5%를 기록했다. 코드포스 ELO는 3206점으로 GPT-5.5(3168점)보다 높다. SWE-bench 검증 점수도 80.6%인데, 클로드 오퍼스 4.7이 80.8%니까 사실상 동급이다. 실제 깃허브 이슈를 해결하는 능력만 보면 미국 최정상 모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복잡한 명령줄 워크플로를 테스트하는 터미널-벤치 2.0에서는 67.9%로 GPT-5.5(82.7%)에 14.8포인트 뒤처졌다. 에이전트형 작업에서는 격차가 있다. 코딩 보조 도구로는 충분히 쓸 만하지만, 복잡한 자율 작업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개발자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 실사용 측면에선 호의적이다. "GPT-5.5 절반 성능에 10분의 1 가격이라면 쓸 이유가 있다"는 분위기가 많다. 결국 모든 작업에서 최고를 원하는 사람과, 충분히 좋은 성능을 저렴하게 원하는 사람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딥시크는 후자를 노린다.
75% 인하, 노린 건 미국이 아니라 경쟁사
V4 출시와 동시에 딥시크는 API 가격을 대폭 내렸다. V4-프로 기준 입력 토큰 100만 개당 1.74달러, 출력은 3.48달러가 표준 가격인데, 프로모션 기간 동안 75% 할인을 적용하고 있다. GPT-5.5나 클로드 오퍼스 4.7 대비 10분의 1 수준이다.
이 가격 인하가 미국 AI 기업보다 중국 경쟁사에 더 가혹했다. 딥시크 발표 직후 홍콩 증시에서 지푸AI 주가는 3.4%, 미니맥스는 10% 급락했다. AI타임스는 "딥시크가 V4 출시와 동시에 API 가격을 75~97% 인하해 중국 AI API 사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전했다.
10년 넘게 IT 시장 흐름을 봐왔는데, 이런 구도는 낯설지 않다. 새로운 무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타격받는 건 비슷한 위치에 있는 옆의 경쟁자다. 딥시크는 지금 중국 AI 시장 내 지배력을 굳히고 있다. 미국 기업들과의 싸움은 다음 라운드다.
엔비디아가 올랐다는 게 의미하는 것
그렇다면 왜 엔비디아는 올랐을까.
지난해 딥시크-R1 이후 시장이 한 가지를 배웠다. 저렴한 AI 모델의 등장이 GPU 수요를 줄이지 않는다는 것. 더 싼 추론 비용이 AI를 쓸 수 있는 영역을 넓히고, 더 많은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이 생기면 결국 컴퓨팅 수요는 늘어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제번스 역설이다.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커져서 전체 소비가 오히려 증가한다.
솔직히 이번엔 V4가 진짜 충격을 줄 레벨이 아니었다는 것도 있다. R1은 달랐다. 추론 능력에서 의외의 경쟁력을 보이며 "중국이 이미 여기까지 왔나"라는 실제 놀라움을 줬다. V4는 딥시크 스스로 "프론티어에 못 미친다"고 인정한 모델이다. 시장이 과열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화웨이 칩 양산이 다음 변수
이번 발표의 핵심은 기술 자립에 있다고 본다.
딥시크가 엔비디아 없이 V4를 만들었다는 사실, 화웨이가 어센드 칩으로 프론티어 AI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변화다. 미국 수출 통제가 시행된 지 3년이 넘었고, 그 사이 화웨이는 자체 칩 라인업을 키웠고, 딥시크는 그 위에서 돌아가는 세계 최대 오픈소스 모델을 냈다.
딥시크는 어센드 950 양산이 늘수록 가격을 추가로 내릴 수 있다고 했다. 화웨이 칩 공급이 곧 중국 AI 경쟁력의 척도가 되는 구조다. 엔비디아를 우회한 AI 생태계가 조금씩 실체를 갖춰가고 있다. 이 흐름이 계속되면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가 실제로 얼마나 유효한지를 다시 계산해야 할 시점이 온다.
V4가 GPT-5.5를 꺾지는 못했다. 하지만 3~6개월 격차라면, 다음 버전은 어디쯤에 있을까. 그 질문이 이번 발표에서 가장 불편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