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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도시에, 딥마인드가 둥지를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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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진 곳이 서울 포시즌스 호텔이다.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는 서울에서 4일을 보내고 떠났다. 그리고 2026년 4월 27일, 데미스 하사비스는 같은 호텔에서 한국 정부와 MOU에 서명했다. 이번엔 돌아가지 않는다.

구글이 올해 안에 서울 강남에 AI 캠퍼스를 연다. 런던 딥마인드 본사를 제외하고 전 세계 최초다. 규모는 약 600평, 기존 구글 코리아 사무실 내부를 연구·협력 허브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화려한 신축 건물이 아니라 실용적인 구조다. 그게 오히려 진짜처럼 보인다.

구글 딥마인드 서울 AI 캠퍼스 개요

왜 서울인가 — 일본도 싱가포르도 아니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의외였다. 구글의 아태 협력 거점으로 보면 일본이 먼저일 것 같았다. 미일 반도체 동맹이 있고, 소프트뱅크·도요타 같은 파트너도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빅테크 허브의 원조 격이다. 그런데 서울이 됐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첫 번째는 반도체다.

AI 연산에 필수적인 HBM 메모리를 만드는 곳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다. 엔비디아 H100·B200 안에 들어가는 핵심 메모리가 한국산이다. 딥마인드 입장에서 AI 모델 연구와 하드웨어 최적화를 동시에 진행하려면, 칩 제조사 바로 옆에 있는 게 유리하다. 구글 자체 TPU의 메모리 공급 안정성을 위해서도 한국 파트너십은 사실상 필수였다.

하사비스는 방한 기간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연달아 만났다. 4대 그룹 총수를 하루이틀 안에 다 만나는 일정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다. AI 반도체 공급, 피지컬 AI, 로보틱스 협력까지 의제가 넓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알파고의 기억이다. 하사비스는 AlphaGo 프로젝트를 만들 때 바둑에서 AI 가능성의 근거를 찾았다고 했다. 세계에서 바둑이 가장 깊게 뿌리내린 나라가 한국이고, 그 나라에서 AI의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서사가 있다. 10년 뒤 같은 도시에 연구 거점을 여는 건, 구글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다.

세 번째는 정치적 타이밍이다. 현 정부가 AI를 국가 핵심 아젠다로 강하게 밀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하사비스를 접견했고, 과기정통부 장관이 MOU를 체결했다. 이 정도 정부 모멘텀이 있는 나라에 거점을 열면 협력 속도가 다르다.

딥마인드 AI 연구 협력

K-문샷과의 연계 — 어디에 붙는가

한국 정부의 'K-문샷' 프로젝트는 2035년까지 생명과학, 미래에너지, 물리 AI, 우주, 소재, AI 과학자, 반도체, 양자 8개 분야에서 국가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구글 AI 캠퍼스는 이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협력 채널이 된다.

캠퍼스에서 일하게 될 딥마인드 연구원은 최소 10명. 미국 본사에서 파견된다. 서울대·KAIST 등 국내 대학과 직접 연결되고, 정부 AI 바이오 혁신 허브 3곳과도 협력하는 구조다. 알파폴드, 날씨 예측 AI 같은 딥마인드 주요 모델에 국내 연구기관이 접근할 수 있는 창구도 열린다.

물론 실제 성과는 두고 봐야 한다. 정부 주도 협력 프로그램이 관료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고, MOU 체결이 곧 성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딥마인드 연구원이 물리적으로 서울에 있다는 건 다른 차원이다. 지금까지 국내 연구자가 딥마인드와 접점을 갖는 방법은 해외 유학이나 원격 인턴십 지원이 사실상 전부였다. 서울 캠퍼스가 열리면 그 접점이 국내로 내려온다.

10명으로 뭐가 바뀌냐는 질문에

숫자만 보면 작다. 딥마인드 전체 인력이 수천 명인데 서울 파견 규모가 최소 10명이다. 실망할 수도 있다.

다른 각도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서울에 딥마인드 연구원이 몇 명인가. 0명이다. 10명은 0에서 10이다.

더 중요한 건 이 캠퍼스가 전례 없는 결정이라는 점이다. 구글은 런던 딥마인드 본사 외에 AI 전용 연구 거점을 해외에 연 적이 없다. 서울이 그 첫 사례라는 건, 구글 내부의 한국에 대한 판단이 담긴 신호다. 규모보다 이 결정 자체가 더 크다.

리스크도 있다. 10명으로 시작해서 5년 뒤에도 10명이면 그냥 홍보용으로 끝난다. 캠퍼스가 확장되고 한국 연구자와의 공동 성과가 실제로 나와야 의미가 생긴다.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하사비스가 대통령 앞에서 말한 AGI 5년

개인적으로 이 발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AGI 도달 시점을 물었고, 하사비스는 주저 없이 답했다. "5년 안에, 이르면 2030년." 공식 석상, 대통령 앞, 카메라 앞에서 한 말이다. 외교적 수사였다면 더 조심스러운 표현을 썼을 거다.

하사비스가 AGI를 낙관하는 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알파폴드로 생명과학의 난제를 풀었고, 알파제로로 체스·바둑·장기를 동시에 정복했다. 그 경험에서 나온 낙관이다.

그런데 AGI 정의가 문제다. "인간의 모든 인지 능력을 구사하는 AGI"가 뭔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 수학 풀기, 언어 이해, 이미지 생성은 AI가 이미 한다. 의식이나 자아 수준까지 포함하는 AGI라면 2030년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연구자도 많다.

하사비스가 말하는 AGI는 아마 실용적 정의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지식 업무를 AI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 그 맥락이라면 5년 안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AI 에이전트가 코딩, 문서 작성, 의학 논문 리뷰를 이미 인간 수준으로 하고 있으니까.

중요한 건 이 발언의 무게다. 딥마인드 CEO가 국가 원수 앞에서 타임라인을 못 박았다. 내부 확신이 없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서울과 AI 미래

서울이 AI 지도에서 달라진다

단기적으로 체감할 변화는 없다. 캠퍼스가 연내 열릴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중장기적으로는 다르다. 삼성·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과 딥마인드 연구자가 같은 도시에서 일하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공동 연구의 속도가 달라진다. AI 모델에 최적화된 칩 설계, 칩 특성에 맞게 조정된 학습 알고리즘. 이런 작업이 지금보다 훨씬 빠른 피드백 루프로 이루어질 수 있다.

국내 AI 연구 생태계 입장에서도 기회다. 딥마인드와의 공동 연구 경력이 생기고, 그 결과물이 국제 논문으로 나오면 국내 연구자의 글로벌 포지셔닝이 달라진다. 서울대나 KAIST 연구자가 딥마인드 내부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

기회가 실현되느냐는 결국 한국 생태계의 역량에 달렸다. 구글이 문을 열었고, 그 문을 어떻게 쓸지는 이쪽 이야기다.

10년 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많은 사람이 "AI가 정말 강하네"라고 감탄했다. 이번엔 다른 층위의 이야기다. AI를 만드는 사람들이 서울에 둥지를 튼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