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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D 시총 1조 달러 돌파, 페이페이 리 월드랩스 11조 인수—엔비디아 추격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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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혼자 먹던 파이를 AMD가 드디어 건드리기 시작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AMD 주가가 장중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350조 원) 를 돌파했다. 애플,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은 세계 네 번째 반도체·테크 기업의 '1조 달러 클럽' 가입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AMD의 시가총액은 $2,000억도 안 됐다. AI 붐이 이 회사를 어디까지 밀어올린 건지 숫자로 봐도 실감이 안 날 정도다.

같은 날 AMD는 AI 대모(AI Godmother) 로 불리는 페이페이 리(Fei-Fei Li)가 창업한 스타트업 월드랩스(World Labs) 를 전액 주식 교환 방식으로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거래 규모는 약 $82억 달러(약 11조 원). AI 반도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모델 쪽으로 수직 통합을 노리는 수읽기다.


리사 수가 만들어낸 10년의 반전

지금의 AMD를 이야기하려면 2014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시절 AMD는 거의 파산 직전이었다. 인텔에 CPU 시장을 내주고, GPU에선 엔비디아에 밀리면서 적자가 수년째 이어졌다. 당시 주가는 $2 수준이었고, 반도체 업계에선 AMD의 존재감이 사실상 흐릿해지고 있었다.

반전의 계기는 리사 수(Lisa Su) CEO 취임이었다. 그는 PC용 저가 칩 라인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컴퓨팅에 베팅했다. 2017년 내놓은 라이젠(Ryzen) CPU가 시장에서 의외의 성공을 거뒀고, AI 수요가 폭발하자 Instinct MI 시리즈 GPU가 본격적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AMD Instinct GPU가 서버 랙에 설치된 모습, 블루와 레드 LED가 빛나는 데이터센터 환경

지금 AMD의 주력 AI 칩은 Instinct MI350X다. 엔비디아 H200과 직접 맞붙는 제품인데, 가격이 15~20% 싸면서 특정 워크로드에서 성능이 오히려 앞선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메타(Meta)가 최대 6GW 규모의 AMD Instinct GPU 배포를 약속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Azure에 AMD 하드웨어 비중을 계속 늘리고 있다. 고객사들이 "엔비디아만 쓰면 협상력이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고, AMD가 그 반사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AMD가 $1조까지 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AI 수요 자체가 지금처럼 폭발적일지 몰랐으니까. 2020년대 초반만 해도 "AMD가 엔비디아 따라잡는 건 10년 안에 안 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틀렸다.


페이페이 리가 왜 중요한가

페이페이 리는 AI 업계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 스탠퍼드대 AI 연구소 소장, 구글 클라우드 AI 부문 부사장을 거쳤고, 무엇보다 ImageNet을 만든 사람이다. 딥러닝 혁명의 토대가 된 1,400만 장 이미지 데이터셋. 현재 우리가 쓰는 AI 비전 기술 대부분이 ImageNet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페이페이 리가 2023년 창업한 회사가 월드랩스다. 비전은 하나였다. "AI가 2D 화면을 넘어 3D 공간을 이해하게 만들겠다." 이른바 **공간 지능(Spatial Intelligence)**이다.

페이페이 리가 공간 지능 AI 기술을 프레젠테이션하는 모습, 3D 포인트 클라우드 데이터가 배경에 표시된 미래지향적 연구실 환경

공간 지능이 왜 중요하냐면, 자율주행·로봇·증강현실(AR)이 결국 이 기술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카메라 영상을 보고 "저기에 물체가 있고, 거리는 2.3미터이고, 움직이는 속도는 초당 1미터"라는 걸 실시간으로 계산해내야 자율주행 차가 충돌 없이 달린다. 텍스트 생성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이 레이어는 별도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AMD 입장에서는 GPU 하드웨어만 팔다가 공간 지능 소프트웨어·모델 레이어를 한 번에 확보한 셈이다. 엔비디아가 CUDA 생태계로 소프트웨어 락인(lock-in)을 구축한 것처럼, AMD도 자체 소프트웨어 스택을 쌓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월드랩스 인수는 그 방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을 것이다.

물론 $82억 달러가 싼 건 아니다. 창업 3년 된 스타트업에 11조 원을 주식으로 썼다. 주주들 입장에서는 희석(dilution)이 생기는 거고, 통합이 잘 안 되면 비싼 수업료가 된다. 아직 결과를 논하긴 이르다.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1조 달러는 상징이다. 하지만 숫자보다 중요한 건 지금 AI 인프라 시장에서 AMD가 실제로 파이를 가져오고 있느냐다.

현재 AI 데이터센터 GPU 시장에서 엔비디아 점유율은 여전히 80% 이상이다. AMD의 ROCm 소프트웨어 생태계는 CUDA에 비해 아직 불완전하다. 쿠다 생태계에 익숙한 개발자들이 AMD로 갈아타려면 상당한 마이그레이션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이 점은 AMD의 분명한 약점이다.

반도체 시장 점유율 경쟁을 나타내는 차트, 빨간 AMD와 초록 엔비디아 막대그래프가 교차하는 모습, 주식 시장 데이터 디스플레이 배경

그럼에도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빅테크들이 AMD를 진지하게 쓰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하다. 공급 다변화다.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지 않으면 H100 대란 같은 상황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조달 협상에서도 카드가 없어진다. 그래서 다들 AMD를 키우고 있다. 이건 AMD의 기술력만으로 된 일이 아니라 고객사들의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삼성이 이번 달 HBM4 칩의 엔비디아 납품 자격을 통과해 11월부터 양산에 들어간다는 소식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SK하이닉스 독주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 가격이 내려가고 공급이 안정된다. AMD도, 엔비디아도, 결국 칩을 둘러싼 공급망 전쟁을 함께 치르고 있다.

내가 보기에 AMD의 $1조 클럽 입성은 엔비디아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기보다는 "AI 반도체 시장이 이제 두 플레이어가 공존할 만큼 커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10년 전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퀄컴이 미디어텍을 견제하면서도 공존했던 것처럼. 파이 자체가 커지면 2등도 먹을 게 생긴다.


월드랩스 통합이 예상대로 굴러가고, ROCm 생태계가 개발자 친화적으로 성숙해지고, Instinct MI 시리즈 성능이 계속 따라잡는다면—AMD는 2028년 즈음 훨씬 다른 회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의 $1조는 그 여정의 중간쯤 아닐까 싶다.

2014년 $2짜리 주식이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생각하면,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솔직히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