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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IT쇼 2026 개막, 피지컬 AI 460개사가 코엑스를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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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가 오늘 하루 로봇 도시가 됐다. 22일 오전, 서울 코엑스 A홀을 중심으로 2026 월드IT쇼(WIS 2026)가 문을 열었다. 17개국 460개사, 1,400부스. 숫자보다 분위기가 달라진 게 더 컸다.
예전 월드IT쇼라고 하면 스마트폰이 주인공이었다. 그게 몇 년 전이다. 지난해부터 슬그머니 AI가 중심에 서더니, 올해는 아예 슬로건을 "AI, 현실을 움직이다"로 박아놨다. 그 중심에 있는 키워드가 피지컬 AI(Physical AI)다.
솔직히 피지컬 AI라는 단어 처음 들었을 때는 마케팅 용어처럼 들렸다. "그냥 로봇 아니야?" 싶었다. 근데 이게 좀 다르다.
화면 속 AI와 몸 가진 AI의 차이
피지컬 AI를 가장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기존 AI는 화면 안에 있었다. 챗GPT에 물어보면 답을 준다. 번역해주고, 코드 짜주고, 그림 그려준다. 근데 컵을 들어올리거나 공장 바닥을 청소하거나 집에서 빨래를 개는 건 못 한다.
피지컬 AI는 그 벽을 뚫으려는 시도다. AI가 카메라로 환경을 인식하고, 상황을 판단하고, 로봇 팔이나 바퀴 달린 몸체를 통해 실제로 행동한다. 화면 밖으로 나온 AI인 셈이다.
기존 로봇과 차이는 '학습'에 있다. 기존 산업용 로봇은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동작만 반복한다. 주변 환경이 조금만 달라져도 멈춘다. 피지컬 AI는 환경 변화를 스스로 인식하고 그에 맞게 판단과 행동을 조정한다.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AI가 로봇의 신경계가 되는 것이다.
엔비디아 젠슨 황이 올초 CES에서 "모든 산업 기업이 로봇 기업이 될 것"이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과장이라고 봤다. 그런데 올해 월드IT쇼 전시장을 둘러보면 그 말이 점점 현실로 당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국내 기업들, 각각의 방식으로 뛰어들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SK텔레콤 부스다. 864㎡, 약 262평 규모로 이번 행사에서 단일 통신사 부스로는 가장 크다. 콘셉트는 'AI의 모든 것'인데, 피지컬 AI 공간에서는 K RaaS(서비스형 로봇)를 선보인다. 이기종 로봇들이 서로 통신하면서 자율 협업하는 방식이다. 서로 다른 제조사의 로봇이 하나의 플랫폼 위에서 작동하는 그림인데, AI 인프라부터 모델, 서비스까지 풀스택으로 쌓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LG유플러스는 이번에 처음으로 단독 부스를 차렸다. 그동안 통합관 형태로 참여했는데 독립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람중심 AI'를 테마로 내세웠다. AI가 산업보다 일상에 먼저 들어온다는 방향을 택한 셈이다. SKT의 B2B 로봇 협업 대비 차별화 포인트가 명확하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S26 시리즈와 함께 스페이셜 사이니지를 전시했다. 3D 안경 없이 입체감을 구현하는 디스플레이다. 단순 하드웨어 스펙보다 공간과 디스플레이가 어떻게 융합되는지를 보여주는 방향으로 꾸렸다. AI가 칩이나 소프트웨어를 넘어 공간 자체를 재설계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이번 전시에서 특이했던 건 'K-AI 반도체 생태계관'이다.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딥엑스 같은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한 공간에 모였다. 실제로 이들 기업 매출이 전년 대비 최소 2배에서 최대 9배까지 올랐다. 전시장 분위기도 작년과 달리 자신감이 있었다. 숫자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젠슨 황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들
피지컬 AI 분야에서 전 세계 판을 바꾸고 있는 건 단연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올초 GTC에서 차세대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그루트 N2(GR00T N2)를 예고하며 글로벌 로봇 회사들과 전방위 협력을 선언했다. 1X, 아질리티, 피규어, 보스턴 다이나믹스 등이 모두 엔비디아의 플랫폼인 코스모스 월드 모델과 아이작 심(Isaac Sim)을 기반으로 개발하고 있다. 생태계 구축이 완성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구글 딥마인드는 다른 방향으로 치고 들어왔다. 비전-언어-행동(VLA) 모델을 탑재한 제미나이 로보틱스를 내세워 "로봇 두뇌를 바꾸겠다"고 했다. 로봇 하드웨어보다 로봇이 생각하는 방식, 즉 인지 모델을 먼저 장악하겠다는 전략이다. 엔비디아와는 결이 다르다.
현대차그룹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완전 전동식 차세대 아틀라스는 2028년부터 반복 공정에 실제 투입될 예정이다. 2030년 이후에는 더 복잡한 공정으로 확장한다는 로드맵도 나왔다.
이게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로봇 회사들이 "곧 현장에 투입한다"는 말을 수십 년째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구체적인 연도를 박았다. 과거에 그런 숫자를 잘 안 내놨다. 이 변화 자체가 신호다.

이걸 왜 봐야 하는가
피지컬 AI를 그냥 로봇 전시로 보면 좀 손해다. 이 흐름이 가져오는 변화는 로봇 산업 안에 머물지 않는다.
제조업이 바뀐다. 자동차 공장에서 용접 로봇을 쓰는 건 오래됐다. 그건 지정된 동작을 반복하는 거다. 피지컬 AI가 탑재된 로봇은 환경이 바뀌어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지금보다 훨씬 복잡한 공정을 자동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류도 마찬가지다. 이미 아마존 창고에는 로봇들이 넘쳐나지만, 지금의 로봇은 정해진 선반에서 정해진 박스를 집는 수준이다. 피지컬 AI가 본격화되면 임의 배치된 물건도 인식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된다.
SKT가 내세운 서비스형 로봇은 당장 카페, 호텔, 병원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을 목표로 한다. 개인 가정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지만, 방향은 그쪽이다.
한 가지 솔직한 생각을 말하자면, 피지컬 AI가 정말 빠르게 확산되면 고용 시장 충격이 꽤 클 것 같다.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2028년에 공장에 넣겠다고 했을 때, 그 공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없다. 기술 발전이 늘 그랬듯이 새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전환 과정은 항상 험하다. 그 속도가 문제다.
전시장 밖에서 벌어지는 일
월드IT쇼 같은 행사가 의미 있는 건 거기서 발표되는 신기술 자체가 아니다. 어느 방향으로 돈이 몰리고 있는지, 어떤 기업이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가 드러나는 게 더 중요하다.
오늘 전시장에서 눈에 들어온 건 통신 3사가 모두 AI를 단순 서비스가 아니라 플랫폼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SKT의 K RaaS, KT의 AI 인프라, LG유플러스의 사람중심 AI — 방향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AI를 도구가 아니라 생태계로 구축하려 한다는 거다.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이 생태계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도 작은 희망이다. 엔비디아 독주가 계속되는 건 글로벌 흐름이지만, 그 위에서 한국 기업들이 어떤 틈새를 만들어가는지가 앞으로 몇 년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피지컬 AI가 진짜 원년이 되는지는 2028년쯤 다시 따져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