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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수출 역대 최대, 코스피는 왜 폭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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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800억 달러를 넘겼다. 반도체만 328억 달러. 전년 대비 151% 폭증. 숫자만 보면 축제 분위기여야 한다.
그런데 증시 화면을 켜면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4월 2일 코스피는 4.47% 급락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란히 4%대 빠졌다. 환율은 1520원을 찍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의 최고치다.
역대 최대 수출과 증시 폭락이 같은 주에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정리해봤다.
3월 수출, 진짜 역대급이긴 하다

3월 전체 수출액은 861억 달러. 직전 최고치가 작년 12월 695억 달러였으니 한 번에 160억 달러 이상을 뛰어넘은 셈이다. 무역수지 흑자도 257억 달러로 역대 최대.
반도체가 이걸 끌어올렸다. 328억 달러면 전체 수출의 38%를 반도체 혼자 감당한 거다. DDR4 8GB 고정가가 전년 대비 863% 올랐고, DDR5 16GB는 630% 뛰었다. AI 서버 수요가 메모리 가격을 미친 듯이 끌어올린 결과다.
10년 넘게 블로그를 하면서 반도체 수출 관련 글을 여러 번 썼지만, 이 정도 숫자는 처음 본다. 솔직히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시장은 공포에 빠졌다
문제는 이 화려한 수출 실적이 발표된 바로 그 주에 시장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이란을 석기시대로 만들겠다"고 했다. 종전 기대감에 슬슬 반등하던 시장은 이 한마디에 얼어붙었다. WTI 유가는 하루 만에 12% 급등해 112달러를 찍었다. 4년 만의 100달러 돌파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올해 내내 100달러 수준이 유지될 거라고 내다봤다.
유가가 오르면 환율이 뛴다. 원유 결제는 달러로 하니까 달러 수요가 급증한다. 여기에 외국인 자금 이탈까지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이 1520원을 뚫었다.
삼성전자 18만 600원, SK하이닉스 85만 4000원. 반도체 수출이 역대 최대라는 뉴스와 반도체 주가 4%대 급락이 같은 날 뉴스피드에 나란히 올라온다. 이게 지금 한국 증시의 현실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진짜 오는 건가

서울신문이 "한국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는 기사를 냈다. 과장이 아닐 수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4%로 뛰었다. 작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식료품, 교통비가 연달아 오르고 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도 2월 1333에서 3월 말 1827로 올랐다. 물류비가 오르면 소비재 가격은 시차를 두고 따라간다. 4월 물가는 더 오를 거라는 게 중론이다.
경기는 어떤가. 중소기업들은 "잔인한 4월"이라고 부르고 있다. 유가, 환율, 물류비 세 가지가 동시에 올라서다. 정부가 5조 원 규모 채권시장 안정화, 유류세 추가 인하, 수출입은행 10조 원 정책금융 등을 쏟아내고 있지만, 중동발 리스크가 근본 원인인데 정부 대응만으로 막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내 생각에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아직 이르다. 수출은 역대 최대이고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진행 중이니까. 다만 "성장은 하는데 국민 체감 경기는 최악"이라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 맞다.
수출 호황이 체감 경기로 연결 안 되는 이유

반도체 수출이 아무리 잘 돼도 그 돈이 바로 내 지갑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자본집약적이다. 공장 한 개 짓는 데 수십조가 들어가고, 고용 인원은 상대적으로 적다.
환율이 1520원이면 수출 기업 매출은 원화로 환산할 때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수출 금액이 더 화려하게 보이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같은 환율이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서 소비자 주머니를 털고 있다.
결국 "반도체 잘 팔려서 나라 경제 좋다"와 "장 보러 가면 한숨 나온다"가 공존하는 기묘한 시대다. 코스피가 하루 만에 4% 빠진 건 시장이 후자의 무게를 더 크게 본다는 뜻이다.
4월 4일 코스피가 2.7% 반등하면서 5377로 마감했다. 기술적 반등일 수도 있고, 바닥을 다지는 과정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중동 상황이 정리되기 전까지 이런 출렁임이 계속될 거라는 점이다. 반도체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전쟁 앞에서는 숫자가 힘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