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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칩 사려고 100조 빚 낸다—브로드컴·스페이스X·오라클의 이상한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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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회사가 AI 기업에 칩을 팔기 위해 돈을 빌린다. AI 기업은 그 칩으로 서비스를 키워 다시 칩을 산다. 로켓 회사는 AI 인프라를 짓겠다며 54조원을 빌리겠다고 나선다. 월스트리트는 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줄을 선다.

2026년 10월, AI 인프라 시장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AI 데이터센터 GPU 랙

브로드컴, 오픈AI 칩 구매를 위해 67조원 빌린다

월스트리트저널이 10월 7일 단독 보도한 내용이 핵심이다. 브로드컴이 오픈AI와 공동 개발 중인 맞춤형 AI 반도체 구매 자금으로 500억달러(약 67조원) 이상의 부채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협상 상대는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블랙스톤 같은 사모 대출 기관들이다. 거래는 연말 전 마무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직 초기 협상 단계라 최종 규모는 달라질 수 있지만, 방향은 명확하다.

브로드컴과 오픈AI의 프로젝트 자체는 새롭지 않다. 두 회사는 지난해 브로드컴의 네트워크 기술을 활용한 10기가와트(GW) 규모의 오픈AI 맞춤형 칩을 공동 개발하기로 발표했다. 배치 시점은 2026년 하반기부터 2029년 말까지로 계획됐다. 문제는 그 돈을 어디서 구하느냐였고, 답이 나왔다. 빚이다.

스페이스X도 54조원, 오라클도 참전

브로드컴만이 아니다.

스페이스X는 엔비디아 AI칩을 대량 확보하기 위해 400억달러(약 54조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논의 중이라고 알려졌다. 구조는 은행 대출 100억달러, 투자등급 회사채 300억달러 발행이다. 스타링크와 스타십을 갖고 있는 회사가 AI 인프라 구축에 이 규모로 뛰어드는 건 놀랍다.

오라클도 마찬가지다. 아폴로와 골드만삭스에 대규모 반도체 구매 자금 협상을 진행 중이며, 이미 1,690억달러를 넘어선 회사 부채 위에 더 쌓겠다는 계획이다.

세 회사를 합산하면 120조원이 넘는 차입이 AI칩을 향해 흘러가는 셈이다. 솔직히 이건 좀 기이한 그림이다.

금융 흐름과 AI 반도체 시각화

'순환금융'이라는 새로운 공식

이 구조에 이름이 붙었다. 순환금융(circular financing)이다.

흐름을 따라가 보자. 오픈AI가 브로드컴에 맞춤형 칩을 주문한다. 브로드컴은 그 칩을 만들어 팔기 위해 돈을 빌린다. 오픈AI는 그 칩으로 챗GPT를 운영해 매출을 올린다. 그 매출로 다시 칩을 주문한다.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이자를 받는다.

엔비디아는 이 순환 고리에서 최종 수혜자다. 브로드컴이 빌린 돈으로 오픈AI 칩을 만들어도, 스페이스X가 빌린 돈으로 엔비디아 GPU를 사도, 네트워크 장비와 인터커넥트에서 브로드컴이 이기든 엔비디아가 이기든, AI 인프라 수요 자체가 커지면 커질수록 수혜를 입는다.

머니투데이가 보도한 신용지표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대규모 차입은 해당 기업들의 신용지표에 경고등을 켰다. 오라클의 순부채는 이미 1,690억달러를 넘어섰다.

닷컴 버블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10년 넘게 블로그 하면서 비슷한 구조를 봤던 기억이 있다. 2000년대 초 통신 회사들이 광케이블 네트워크를 깔겠다며 대규모 부채를 끌어모았다. 당시 논리도 지금과 비슷했다. "인터넷 트래픽이 매년 두 배씩 늘어나니 인프라를 미리 깔아야 한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인터넷 트래픽은 정말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런데 그 기업들의 절반 이상이 파산했다. 월드컴이 대표적이다. 수요 자체의 예측은 맞았지만, 타이밍과 경쟁 과열로 실제 현금흐름이 부채 상환을 감당하지 못했다.

지금 AI가 그 길을 걸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 구조가 새로운 위험 요소를 만들고 있다는 점은 짚어야 한다. AI 서비스 매출 성장이 부채 상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될까.

오픈AI는 최근 9월 말 기준 연 환산 매출이 500억달러라고 투자자들에게 공개했다. 연말 목표 700억달러와는 여전히 200억달러 차이가 난다. 나스닥 100지수가 이 소식에 1.4% 하락하고,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3.4% 빠진 건 시장도 이 숫자를 예민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AI 인프라 투자 경쟁 추상화

그래서 이게 버블인가

쉽게 단정 짓기 어렵다.

빚 내서 설비 투자하는 건 자체로 나쁜 건 아니다. 항공사가 비행기 살 때, 통신사가 네트워크 깔 때도 다 부채를 쓴다. 문제는 그 자산이 기대한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느냐다.

AI 인프라의 경우, 현재까지의 흐름은 긍정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 아마존 AWS 모두 AI 관련 매출이 전체 클라우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오픈AI의 챗GPT 매출도 가파르게 올라가는 중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지금 이 구조 자체가 붕괴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이미 100조원 이상의 레버리지가 쌓인 상태에서 AI 매출 성장이 한 분기라도 기대에 못 미치면, 그 충격은 실물보다 금융 시장에서 먼저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2000년대 초처럼.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주가가 오픈AI 매출 수치 하나에 출렁이는 걸 보면, 이미 그 연결고리는 촘촘하다. 칩 회사 주가에 AI 서비스 기업 매출 전망이 실시간 반영되는 구조. 재미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