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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채굴자들이 BTC를 던지고 AI로 간다 — 15,096개, 10억 달러의 대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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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을 캐서 비트코인을 쌓던 사람들이, 이제 비트코인을 팔아서 AI 서버를 사고 있다.

지난해 10월 사상 최고가 12만 6천 달러를 찍은 뒤로 비트코인은 거의 반 토막이 났고, 채굴업체들의 수익성은 바닥을 기고 있다. 그 와중에 AI 데이터센터 사업은 날이 갈수록 돈이 되고 있으니, 채굴기 돌려서 비트코인 한 개 더 캐는 것보다 그 전기와 데이터센터 공간을 AI 회사에 빌려주는 게 훨씬 남는 장사가 된 거다. CoinDesk 보도에 따르면 10월 이후 상장 채굴기업들이 처분한 비트코인이 15,096개, 금액으로는 대략 10억 달러를 넘긴다.

내가 이 숫자를 보고 든 첫 번째 생각은 "이건 단순한 손절이 아니다"였다. 이건 산업 자체가 방향을 틀고 있다는 신호다.

주요 암호화폐 24시간 하락률 및 채굴기업 BTC 매도량 좌측: 주요 암호화폐 24시간 하락률. 우측: 주요 채굴기업별 BTC 매도 규모. 10월 이후 총 15,096 BTC가 시장에 쏟아졌다

채굴의 시대는 끝났나? — 기업별로 뜯어보면 답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누가, 얼마나 팔았는지를 보면 이 흐름의 심각성이 더 선명해진다.

Core Scientific이 가장 극적이다. 2024년 말 겨우 256개였던 보유량을 2025년 내내 캐서 쌓아 2,537개까지 늘려놨더니, 올해 1월에 그중 1,900개를 한꺼번에 팔아치웠다. 1개당 약 9만 2천 달러에 팔았으니 총 1억 7,500만 달러. CFO 짐 나이가드는 "기회를 포착한 매도"라고 표현했지만, CEO 아담 설리번의 말이 더 솔직했다. 그는 자사의 비트코인 채굴을 **"사실상 정리 단계(essentially in runoff)"**라고 표현했다. 남은 약 630개마저 올 1분기 안에 다 팔겠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의 정체성은 이미 "비트코인 채굴업체"가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운영사"로 바뀌었다.

뉴욕 상장사 Cango는 2월에 보유분의 60%인 4,451개를 3억 500만 달러에 처분했다. 역시 AI 확장 자금이 목적이었다. Riot Platforms는 2025년 말 두 달간 2억 달러어치를 팔면서 록데일 인수 자금을 마련했고, Hut 8의 경영진은 4분기 실적 발표에서 비트코인이 더 이상 장기 전략 자산이 아니라고 대놓고 선언했다.

가장 의미심장한 건 업계 최대 보유자인 MARA Holdings의 움직임이다. 53,822개, 원화로 5조 원이 넘는 비트코인을 쥐고 있는 이 회사가 3월 2일 SEC에 제출한 10-K 보고서에서 2026년 매도 정책을 공식 변경했다. 그동안의 "무조건 쌓는다(full-HODL)" 전략을 버리고, 필요하면 보유분까지 팔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아직 실제로 대규모 매도를 집행하진 않았지만, 5만 개가 넘는 물량이 잠재적 매도 압력으로 시장 위에 걸려 있는 셈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흐름이 되돌아갈 거라고 보지 않는다. 2021년 불마켓 때 채굴 마진이 90%까지 올라갔던 시절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024년 4월 반감기 이후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었고, 네트워크 난이도는 역대 최고 수준이며, 해시 가격(채굴자 수익 지표)은 손익분기점 아래로 내려간 지 오래다.


고용 쇼크가 불난 시장에 기름을 부었다

채굴자 매도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시장에, 어제(3월 6일) 미국 고용 통계가 결정타를 날렸다.

2월 비농업 고용이 9만 2천 명 감소했다. 시장 예상치는 5만 명 증가였으니, 방향 자체가 틀어진 거다. 실업률도 4.3%에서 4.4%로 올랐다. 5개월 중 세 번째 고용 감소라는 사실도 불안하지만, 12월 수치까지 -1만 7천 명으로 하향 수정되면서 "미국 노동시장이 생각보다 훨씬 약하다"는 공포가 확산됐다. 의료 부문에서만 카이저 퍼머넌트 파업 영향으로 2만 8천 명이 빠졌고, 연방정부 일자리도 트럼프 행정부의 구조조정으로 2024년 10월 이후 33만 개가 사라진 상태다.

비트코인은 이 숫자가 나오자마자 6만 8천 달러대로 밀렸다. 이더리움은 1,986으로4.331,986으로 4.33% 하락, 솔라나는 85.45로 3.93% 빠졌다. 전체 시가총액은 2.41조 달러, 공포탐욕지수는 18. 극단적 공포 구간이다.

AI 시장 재편 구조도 AI 인프라 수요 폭발, 딥시크 V4 공개, 미국 고용 쇼크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채굴기업의 AI 전환과 시장 하락이 가속화되는 구조

제퍼리스의 이코노미스트 토마스 시먼스는 이번 고용 보고서를 "일시적 악재들이 한꺼번에 몰린 퍼펙트 스톰"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파업과 날씨 영향을 빼더라도 여전히 좋지 않은 숫자라고 덧붙였다. 이 말에 나도 동의한다. 트럼프 취임 이후 평균 월 고용 증가가 5천 명도 안 된다는 사실은 어떤 변명으로도 덮기 어렵다. Block CEO 잭 도시가 AI 대응을 이유로 인력의 40%를 자르겠다고 발표한 것도 지난주의 일이다. AI가 일자리를 먹고 있다는 공포가 숫자로 확인되는 국면에 접어든 거다.

재밌는 건 — 아니, 정확히는 기묘한 건 — 이 와중에도 비트코인 현물 ETF에는 돈이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2월 24일 이후 누적 순유입이 17억 달러(약 2.5조 원)를 넘겼고, 3월 5일 하루에만 2.25억 달러가 유입됐다. 공포탐욕지수 18인 시장에 기관 자금이 꾸준히 흘러들어가는 이 괴리. 개인은 패닉 셀을 하고 기관은 조용히 줍고 있는 구조다. 14일 RSI 25.6이라는 숫자는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수치인데, 이전 두 번(2015년, 2018년 12월) 이후에는 각각 9,900%와 1,700%의 대규모 상승이 뒤따랐다. 물론 바닥 확인 후 3~6개월 횡보를 거친 뒤에야 본격 상승이 시작됐다는 점도 빼놓으면 안 된다.


딥시크 V4, 양회 무대에 올라서다

시장이 요동치는 와중에 AI 쪽에서는 중국발 뉴스가 또 하나 터졌다. 딥시크가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일인 3월 4일에 맞춰 차세대 모델 V4를 공개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로이터 등에 따르면 V4는 약 1조 개 규모의 파라미터를 갖춘 멀티모달 모델로, 코딩 작업에 특화됐으며 최대 100만 토큰의 컨텍스트 윈도를 지원한다.

내가 주목한 포인트는 성능이 아니라 공급망 전략이다. 딥시크는 이번에 엔비디아와 AMD에 사전 접근권을 제공하지 않았다. 대신 화웨이와 캄브리콘 같은 중국 칩 업체와 먼저 최적화 작업을 진행했다. 미국산 GPU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 자체 반도체 생태계로 돌아가겠다는 신호다. 지난해 R1으로 "적은 비용으로도 고성능 AI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면, 이번에는 "미국 칩 없이도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미국 정부 관계자가 개발 과정에 수출 규제 대상인 블랙웰 칩이 쓰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딥시크 측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 AI 경쟁 격화가 비트코인 채굴업체들의 전환을 더 부추기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임대 시장이 커질수록, 이미 전력 인프라와 냉각 시스템을 갖춘 채굴기업들이 AI 쪽으로 넘어갈 유인이 강해지니까. 딥시크가 입력 단가를 100만 토큰당 0.28달러까지 끌어내렸다는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건 오픈AI의 GPT-5.2보다 84%나 저렴한 수준이다. AI 비용이 이렇게 빠르게 떨어지면 수요는 더 폭발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 수요를 감당할 데이터센터와 전력이 더 필요해진다.


그 전기는 누가 대나 — HD현대일렉트릭의 1,850억 베팅

AI 수요가 폭발하면 결국 전기가 필요하다.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가장 빠르게 올라탄 한국 기업이 HD현대일렉트릭이다.

이 회사는 미국 앨라배마에 1,850억 원을 투자해 제2 변압기 공장을 짓고 있다. 765kV급 초고압 변압기를 생산하는 이 공장은 2026년 말 완공, 2027년 가동이 목표다. 완공되면 연간 변압기 생산 능력이 기존 약 100대에서 150대로 늘어난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미국 내 변압기의 70%가 25년 넘게 된 노후 설비인데, 여기에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신규 전력 수요까지 겹치니 변압기 주문이 쏟아지고 있는 거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9월 텍사스 최대 전력회사와 2,778억 원 규모의 초고압 변압기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창사 이래 최대 단일 수주다.

IEA 전망에 따르면 글로벌 전력 수요는 AI와 데이터센터 확장에 힘입어 연평균 약 3.4%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트코인을 캐던 전기가 AI를 돌리는 전기로 바뀌고, 그 전기를 보내는 변압기를 한국 기업이 만든다. 한 편의 산업 재편 드라마가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다.

비트코인 2026년 가격 추이와 채굴자 매도 타이밍 올해 들어 23% 하락한 비트코인 가격 위에, 주요 채굴기업의 매도와 정책 변경 시점을 표시했다. ATH 대비 약 46% 하락한 현재 수준

그래서 어떻게 봐야 하나

비트코인 채굴업체들의 AI 전환은 비가역적 흐름이라고 본다. 반감기 이후 채굴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악화됐고, AI 데이터센터 임대는 장기 계약 기반으로 훨씬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한다. Core Scientific이 CoreWeave와 맺은 장기 호스팅 계약이 대표적이다. 이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시장에는 지속적인 매도 압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MARA의 5만 개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올 경우 충격은 지금과 차원이 다를 수 있다.

단기적으로 비트코인이 6만 5천 달러 아래로 내려가면 기술적으로 상당히 위험해진다. 연초 대비 이미 23% 빠진 상태에서 추가 하방 압력까지 겹치면 5만 달러대 진입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공포탐욕지수 18과 RSI 25.6이라는 극단적 과매도 신호, 그리고 ETF로의 꾸준한 기관 자금 유입은 중장기적으로 반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도 변수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가 어제 "이렇게 안 좋은 숫자가 나오는데 왜 가만히 앉아있느냐"고 발언한 건 의미심장하다.

확실한 건 하나다. AI가 에너지 산업의 판을 바꾸고 있고, 그 여파가 크립토 시장의 수급 구조까지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채굴자들의 대탈출은 끝이 아니라 아직 중간 단계일 가능성이 높다. 비트코인을 캐던 기계가 AI를 돌리는 기계로 바뀌고, 그 기계에 전기를 넣는 변압기를 한국 기업이 만들어 미국으로 보내는 이 연결고리. 2026년 시장을 읽으려면 코인 차트만 볼 게 아니라 데이터센터 착공 현황과 전력 수급 보고서까지 같이 봐야 하는 시대가 됐다.


참고 자료: CoinDesk, The Block, CNBC, BLS, 파이낸셜타임스, 로이터, 한국경제, AI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