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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AI, 그리고 비트코인 — 지금 코인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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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코인 시장의 최대 이슈는 이더리움의 2,000달러 탈환이었다. 그런데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세상이 한 번에 뒤집혔다. 하메네이 사망,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 브렌트유 85달러 돌파. 그 충격파가 닛케이를 2.7% 끌어내리고 코스피를 6,240선까지 밀어버린 뒤, 고스란히 크립토 시장까지 내려왔다.
오늘 아침 기준 BTC는 68,400달러. 지난해 10월 사상 최고가 12만 6천 달러 대비 거의 절반이 날아간 수치다. DOGE -5.99%, ADA -5.10%, ETH -2.31%. 공포탐욕지수는 14. 15개 주요 코인 중 상승한 건 LEO 딱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빨간불이다.
근데 내가 이번 하락에서 정말 주목하는 건 가격 자체가 아니다. 중동 전쟁, AI 산업 전환, 채굴자 대량 매도 — 이 세 가지가 동시에 겹치면서 크립토 시장의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15개 주요 코인 중 LEO만 유일하게 상승. 공포탐욕지수 14는 측정 가능한 거의 모든 지표가 바닥이라는 뜻이다이란 공습 5일, 시장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
2월 28일 자정 직전, 이스라엘이 테헤란을 공습했다. 미국은 '서사적 분노 작전'이라는 작전명을 붙이고 B-2 폭격기까지 투입했다. 하메네이가 사망했고, 이란 군 핵심 지휘부 7명이 추가로 제거됐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보복을 선언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했고, 실제로 150척 넘는 화물선이 해협 진입을 피해 대기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왜 중요하냐면, 전 세계 원유 교역량의 약 21%가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한다. 여기가 막히면 에너지 가격이 로켓처럼 솟는다. 실제로 브렌트유는 공습 직후 하루 만에 8.6% 폭등해 85달러를 돌파했고, 바클레이즈 에너지 분석팀은 10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JP모간은 한발 더 나가서, 해협이 장기 봉쇄되면 120~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내놨다.
한국이 이 상황에서 특히 취약한 이유가 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99%에 달하고, 그 상당량을 중동에서 가져온다. IMF가 2월 보고서에서 지정학적 긴장이 글로벌 성장률을 0.5~0.8%포인트 깎을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무역 개방도 80%짜리 한국은 타격을 정면으로 맞는 구조다. 원달러 환율은 이미 1,500원을 돌파했고, 금융위는 "필요 시 100조+α 규모 시장안정 조치"를 가동한다고 발표했다.
2월 28일 이란 공습에서 시작된 충격파가 유가, 증시, 크립토까지 5일 만에 관통한 경로. 금은 5,149달러로 신고가를 경신 중이다HODL은 끝났다 — 채굴자들이 비트코인을 팔고 AI를 사는 이유
중동 전쟁이 매크로 쪽 폭탄이라면, 크립토 시장 내부에서 터지고 있는 폭탄은 따로 있다. 비트코인 채굴 업체들이 보유 BTC를 대거 매도하고 AI 인프라로 갈아타고 있다. 3월 2일 SEC에 제출된 10-K 공시들을 보면, 이건 몇몇 업체의 일탈이 아니라 업계 전체의 구조적 전환이다.
수치를 보면 말이 필요 없다. Core Scientific은 피크 9,618 BTC에서 630 BTC로 93%를 팔아치웠다. Bitdeer는 아예 보유량을 0으로 만들었다. 2,470 BTC 전량 매각. 세계 최대 상장 채굴 기업 MARA Holdings마저 2026년부터 보유 BTC 매각을 허용하는 정책 변경을 공시했다. 53,822 BTC, 현재 가치로 36억 달러가 넘는 물량이 잠재 매도 압력으로 시장 위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왜 이렇게 됐느냐? 한 분석가의 코멘트가 핵심을 찌른다. 비트코인 채굴 원가가 개당 약 87,000달러인데, 현재 시세는 68,000달러. 캐면 캘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라는 거다. 반면 채굴 업체들이 이미 보유한 데이터센터 인프라는 GPU를 꽂기만 하면 AI 컴퓨팅 사업으로 바로 전환할 수 있다. 2021년 불장 때 90%에 달하던 채굴 이익률이 사실상 증발한 상황에서, 돈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건 당연한 경영 판단이다.
이건 10년 넘게 크립토를 지켜본 나한테도 꽤 충격적인 변화다. "비트코인을 캐는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안 가지고 있다"는 상황이 현실이 됐으니까. 한 분석가가 정리한 문장이 인상적이었는데,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인 Strategy(구 MicroStrategy)는 단 한 개의 사토시도 직접 채굴한 적이 없고, 역사상 처음으로 '생산'과 '보유'가 완전히 분리됐다는 거다.
Core Scientific은 보유량 93%를, Bitdeer는 100%를 매각했다. 매도 자금의 55%가 AI 데이터센터 구축으로 흘러간다하버드 대학교 기부금 운용사 HMC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4분기에 블랙록의 비트코인 ETF(IBIT) 지분을 21% 줄이면서, 동시에 이더리움 ETF(ETHA) 3.87백만 주를 새로 매입했다. 약 8,680만 달러 규모다. 비트코인 ETF가 여전히 하버드의 최대 공개 주식 포지션(2.66억 달러)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이더리움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메시지다.
전문가들은 이걸 단순히 "비트코인 비관론"으로 읽지 말라고 한다. 4분기에 BTC와 ETH 모두 약 25%씩 빠졌고, 하버드 같은 대형 기관은 리스크가 과도하게 커진 자산을 기계적으로 줄이면서 유동성을 확보하는 과정일 가능성이 높다. 사모펀드 캐피탈콜 의무 때문에 가장 유동적인 자산부터 팔아야 하는 구조적 압력도 있다. 그래도 이더리움을 새로 사들인 건, 디지털 자산 포트폴리오를 비트코인 너머로 확장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Fundstrat의 톰 리는 현재 시장이 항복(capitulation)의 후반부에 있으며, 늦어도 4월까지는 바닥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기술 분석가 톰 디마크는 BTC 60,000달러, ETH 1,890달러 부근을 바닥 후보로 제시했다.
피바다 속 생존자들 — NEAR의 40% 폭등이 말해주는 것
온 시장이 빨간불인데 혼자 초록불을 켠 놈들이 있다. NEAR 프로토콜이 지난 주 40% 가까이 폭등했다. 이유는 'Confidential Intents'라는 프라이버시 실행 레이어를 메인넷에 론칭했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기존 블록체인에서는 큰 거래를 하려고 하면 그 의도가 실행 전에 다 보인다. 봇들이 이걸 보고 앞서 사고팔아서(프런트러닝) 일반 트레이더가 손해를 보는 구조인데, NEAR의 새 기능은 거래 규모, 타이밍, 경로를 감추면서도 규제 감사는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기관 투자자들이 온체인 거래를 꺼리던 핵심 이유를 정면으로 해결한 셈이다.
30일 기준 NEAR Intents의 처리 볼륨은 27억 달러, 주간 수수료 수입은 약 95만 달러. 시가총액 대비 수수료가 아직 크진 않지만, 투자자들은 기관 자금이 이 파이프라인으로 들어올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다.
LEO(+1.63%)도 바이낸스의 거래소 토큰 중 유일한 상승 종목이었는데, 이건 거래소 자체 수익이 백업하는 구조라 시장 전체가 빠질 때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강하다. 반대로 DOGE(-5.99%)와 ADA(-5.10%)는 실질적 수익 모델이 약한 코인들이 위기 때 가장 먼저 매도당한다는 걸 다시 한번 보여줬다.
솔직히 이번 사이클에서 내가 느끼는 건 명확하다. "무엇이든 하는 코인"은 살고, "이야기만 하는 코인"은 죽는다. NEAR가 프라이버시 실행 레이어를 실제로 배포해서 40% 뛴 것과, DOGE가 특별한 이유 없이 6% 빠진 것 사이의 차이가 바로 그거다.
앞으로 뭘 봐야 하나
솔직히 지금 시장 방향을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의심부터 할 거다. 중동 상황은 하루 단위로 바뀌고, 채굴자 매도 물량이 얼마나 더 나올지도 미지수다. 그래도 확인해야 할 체크포인트는 있다.
단기(1~2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실제로 장기화되는지. 이란 혁명수비대 전 사령관 모흐센 레자에이가 FT에 해협은 유조선에 "추후 통보 시까지" 개방되어 있다고 밝혔는데, 이게 유지되느냐 깨지느냐가 유가의 분기점이다. 유가가 100달러를 뚫으면 모든 위험자산이 추가 타격을 받는다. 공포탐욕지수가 20 이상으로 올라오는지도 중요한 바닥 시그널이 된다.
중기(1~3개월): MARA의 53,822 BTC가 실제로 시장에 풀리는지. OTC로 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고, 대출 담보로 묶여 있는 물량도 있어서 전량 매도가 바로 일어나진 않겠지만, 비트코인이 68,000달러 아래에서 장기간 머무르면 채굴자들의 매도 압력은 구조적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다. Fundstrat의 톰 리가 제시한 4월 바닥론도 검증 대상이다.
장기(6개월+): 채굴자 → AI 인프라 전환이 비트코인 네트워크 보안에 영향을 주는지. 채굴자들이 빠지면 해시레이트가 떨어지고, 이건 네트워크 보안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직은 해시레이트가 역대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 추세가 반전되는 시점이 온다면 그건 진짜 걱정해야 할 순간이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이런 극단적 하락장에서 레버리지를 유지하는 건 나라면 절대 안 하겠다. 지난 2월 하루에만 3.7억 달러 강제 청산이 발생했고 그중 74%가 롱 포지션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전쟁통에 레버리지를 거는 건 불타는 집에서 성냥을 긋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2026년 크립토의 진짜 게임은 이거다. 중동 리스크 + AI 전환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기술을 가진 프로젝트가 살아남고 나머지는 걸러진다. 하버드가 비트코인을 줄이고 이더리움을 산 것도, NEAR가 시장 폭락 속에서 홀로 40% 뛴 것도, 전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참고 자료: CoinDesk, CoinMarketCap, Bloomberg, Bitcoin Magazine, SEC 10-K 공시(MARA, CORZ), Fortune, Investing.com, 서울신문, 알파경제, 머니투데이